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투표보조 제도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투표보조 제도

2025-06-09
기고문
뉴스풀

이번 대선 투표 참관 중에 특이한 사례를 목격했다. 한 장애인이 활동지원사와 동행하여 투표하고자 하였다. 겉보기에 손을 사용할 수 없으며, 언어장애가 조금 있는 장애인이었다. 선거사무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행한 선거매뉴얼을 보여주며, 장애인이 지명한 2인이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사무원에 따르면, 장애인 당사자가 1인에 해당하는 활동지원사를 데리고 왔으니, 나머지 1인을 반드시 지명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도 있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 사람 중 1인을 지명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 당사자는 나머지 1명의 지명을 거부했다. 자신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며, 손을 사용하는 데에만 장애가 있으니, 손 역할을 해 줄 1명만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은 손 역할을 해주는 단 1명만이 자신이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알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활동지원사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기표할 경우, 이를 알리고 시정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활동지원사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기표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요지는 자신은 신체장애가 있지만 자신 또한 ‘비밀투표를 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장애인은 장시간의 대기 끝에 선거사무원의 허락으로 활동지원사 1명만을 동행한 채 투표할 수 있었다. 장애인당사자는 선거사무원에게 상급 단위에 문의해 볼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고, 선거사무원은 전화로 문의한 끝에 1명만을 동행한 투표를 허가했다. 선거 사무원이 투표할 수 있게 해주긴 했으나, 투표 때마다 장애인만 이런 실랑이와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이 또한 차별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서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앞서 내가 목격한 사례에서는 법률에 해당 조문이 있으니 선거사무원 입장에서 저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준이 너무 일률적이고 단순하다는 데에 있다.

해당 조문 기원을 찾다 보면, [국회의원선거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 국회의원선거법에서는 “맹인 기타 신체의 불구로 인하여 자신이 표를 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정한 사람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원조하게 할 수 있다.“라는 조문이 있었다. 맹인은 시각장애로, 신체의 불구는 신체의 장애로, 원조를 보조로, 언어를 바꾼 외에 실질에 있어서는 현행 법률과 동일하다. 

동일 조문을 최초로 찾을 수 있는 시기는 1960년 6월 23일 제정 시행된 국회의원선거법이다. 그 이전인 [참의원의원선거법], [민의원의원선거법]에서는 투표 원조 인원의 수를 명시하지 않았고, 그보다 이전인 1951년의 국회의원선거법에서는 투표 원조 인원의 수를 1명으로 명시하고 있다. 용어를 바꾼 외에 투표 보조 제도라는 것은 1960년 6월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다. 1960년은 이승만 하야를 위한 419 혁명이 있었던 해이다.

단순히 기표용구를 들어 찍는 기표 행위에 2명이나 인력이 필요할 리는 없다. 법에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받게 하는 이유는, 혹여나 1인의 보조인이 투표자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보조인 2명이 상호 감시하라는 취지일 터이다. 당사자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없다면, 당사자 장애인의 주장대로 보다 ‘비밀투표의 권리’를 보장함이 옳아 보인다. 우리 사회 장애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 수준이 1960년대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그동안의 논의 수준을 반영하여 투표보조 제도 또한 다양하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투표보조 제도를 포함해, 장애인의 참장권을 보장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